이 글은 https://drinkalonetogether.wordpress.com에서 2016년 11월 8일에 작성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버린 버드나무 브루어리ㅠㅠ
3주 전,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반가운 메일 한 통이 옵니다.
‘연차 사용일 도래 알림 – 10.27 ~ 10.28 (2일)’
연차 일주일 전에 시스템 상으로 미리 알려주는 메일인데 연차 계획을 올려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터라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아무 계획도 세워두지 않았기 때문에 곧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해외 여행을 준비하기엔 너무 시간이 촉박하였기에 국내 여행으로 방향을 잡아봅니다.
같이 떠날 사람을 찾아보려다 문득 ‘살면서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에 혼자 떠나보기로 결심합니다.
간단한 의사결정이 끝난 후 훌륭한 여행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러 다닙니다.
대학시절 친구는 군산이 1박2일로 놀러가기에 매우 좋다고 합니다.
군산 사는 회사 동기는 군산에 볼거 없다고 다른 곳을 가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일하는 친구 덕에 실컷 제주도를 다녀온 저에게 다들 제주도를 추천합니다.
‘이 사람들아. 내 마음에 드는 답변을 좀 달라고요…’
그래도 나름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지인들에게 답정너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고는 군산을 염두해두고 혼자 찾아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월요일에는 갑자기 수요일에 6시간짜리 예비군 훈련이 잡혔다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네요. 일주일 중 3일이나 자리를 비우니 월, 화요일이 오죽이나 바빴겠습니까? 여행 계획은 세우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수요일 예비군 훈련이 끝난 후에 바로 여행을 떠나면 짧은 2박3일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칩니다.
여행 기간이 바뀌면 여행지도 바뀌는 법!
화요일 퇴근 후, 1박 2일에 적당하다는 군산은 때려치고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봅니다.
그러다 발견한 블로그에서 혼자 강릉에 가서 신나게 알콜 파티를 즐기고 오신 여성분의 여행기에 푹 빠져 행선지를 강릉으로 정해버립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릉으로 강하게 끌어당긴 포스팅은 바다에 관한 것도 관광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조그마한 브루어리에 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떠나게 된 경위가 너무 길었지만 어찌되었든 수요일 저녁,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불어오는 자유를 온 몸으로 느끼며 달립니다. 오후 8시쯤 미리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찾아갑니다.
외관부터 얼마나 분위기 넘치게요. 설레는 마음 가득 앉고 들어가 앉습니다.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듭니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기에 가지고 간 이어폰은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절로 마음이 편해지고 있던 걱정도 사르르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가장 기본 메뉴인 1.미노리 세션 (Minori session) 부터 주문합니다.
설명처럼 상큼한 잔향이 느껴지면서 깔끔한 맛이 일품인…… 맛있었습니다.
표현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괜한 미사여구로 맥주의 맛을 꾸미고 싶지 않네요.
기회가 되시면 직접 가셔서 드셔보시길 추천합니다.
맥주의 맛도 훌륭하지만 그 분위기가 맛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맥주와 함께 나오는 저 닭다리 과자가 참 맛있었습니다.
카레향과 맛이 살짝 나서 특이하기도 하고 맥주와 참 잘 어울리더군요.
전국의 모든 맥주집에서 마카로니 과자 대신 저 닭다리 과자를 기본 안주로 내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2.즈므 블랑 (Zeumeu Blanc)을 주문하여 맛있게 마시며 꽤 오랜 시간 독서를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맑은 모래가 5리에 걸쳐 있는 그곳은 해 질 무렵이면, 자디잔 새우 무리가 뛰어 올라올 뿐, 사람의 발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다.
…중략…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는 다른 해수욕장처럼 귀찮게 수영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백사장을 거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겁게 수영을 즐기면서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이효석 ‘처녀해변의 결혼’ 中
1936년 9월 <여성>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보낸 시간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치 않아도 유유자적하게 거닐 수 있는’
백사장 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머릿속에 생각이 끊임 없이 맴돌며 머리에 쉴 시간이 없었는데 이 곳에서는 업무의 짐,
역할에 따른 부담과 사람을 대하는 감정 등등을 덜어내고 나니 가벼운 생각만 남더군요.
많은 이들이 홀로 여행을 떠나는 목적 중에는 생각 정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저는
이 여행의 목적을 생각을 쉬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하지 않을 생각
아이러니 하지만 저에겐 매우 간절했었나 봅니다.
복잡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걷어내고 나니 매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웠으니까요.
그 뒤로 여행 다니는 내내 ‘이쁘다.’, ‘아름답다.’, ‘멋있다.’. ‘맛있다.’ 등등 1차원적인 생각만 하고 다녔습니다.
그저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구경을 하기도 했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보기도 했습니다.
혼자 신나게 돌아다니고 난 둘째 날 밤,
다시 그 편안함과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그리워
다시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찾아 혼술을 하였습니다.
3, 4, 5번 맥주를 모두 맛보며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이 브루어리의 근처이던가,
제가 사는 동네에 이런 브루어리가 하나 생기던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더군요.
가게를 나오면서 정말 맛있는 맥주와 좋은 분위기에 반했는데 집에서 멀어서 아쉽다고 말하니
점원께서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양조한 맥주를 수원, 서울 근교에서 판매하는 곳이 있을거라고 합니다.
언제 한 번 꼭 찾아가 보리라는 다짐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많은 생각을 비워내고 나니 평소에는 잘 오지 않던 밤잠도 잘 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생각을 비우는 여행을 자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봅니다.
경고: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또한, 알코올 중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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